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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동체란2/2 (복음나누기7단계)

정월기프란치스코 0 343 2017.05.18 08:31

복음 나누기의 방법

 

복음 나누기를 하는 방법에 일정한 법이나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공동체들이 각자에게 가장 적합한 방법을 선택하면 된다. 그러나 공동체에서 이루어지는 복음 나누기는 학문적인 공부가 아니라 개인적인 나눔을 목적으로 하고, ‘전문가’ 없이 구성원들로 모임이 진행되기 때문에 그 방법들이 매우 비슷하다. 이와 같은 복음 나누기의 단계로, 한 예를 제시해본다.

 

 

복음 나누기 7단계

 

복음나누기 7단계 카드(사목국2017년개정 길잡이)

1. 주님을 초대한다.

기도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십시오.

2. 성서 본문을 읽는다.

…복음 …장을 펴 주십시오.

어느 분이 …절부터 …절까지 읽어 주십시오.

다른 분이 본문을 다시 한 번 읽어 주십시오.

3. 성서 본문 단어나 짧은 구절을 선택하여 묵상한다.

성경말씀 중에서 단어나 짧은 구절을 선택합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세 번씩 외쳐주십시오. 외치는 사이사이에는 잠시 침묵합니다. 어느 분이 본문을 다시 한 번 읽어 주십시오.

4. 침묵 중에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다.

“…분 동안 침묵 중에 하느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묵상하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습니다.

5. 마음 안에 들려온 말씀을 나눈다.

“당신에게 개인적으로 닿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어떤 말씀이 자신에게 들려왔습니까?

개인적인 체험을 나누기에 앞서 말씀 안에서 발견한 예수님이나 하느님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생활을 되돌아보며 그분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나눈다.

“영적 체험”이나 “생활 말씀”에 대한 체험을 나눌 수도 있다. 나눔의 시작은 '' 또는 ''로 한다. 어느 참가자가 성서구절에 대해 “나눔”이 아니라 “설명”을 하더라도, 그 설명에 관하여 “토론”하지 않는다.

6. 말씀에 따라 해야 활동에 대하여 토의하고 실천을 다짐한다.

우리가 한 주() 동안 기억하며 살아갈 '생활말씀'을 선택합니다

-3단계에서 구성원들이 외친 성경말씀 중에서 공동체가 함께 하나의 '생활 말씀'을 정하여 가슴에 새기며 생활한다.

지난 번 모임에서 결정한 활동에 대해 보고해 주십시오.

우리가 이번 주()에 실천할 수 있는 새로운 활동은 무엇이 있겠습니까?

- 누가, 무엇을, 언제 할 것입니까?

- 삶에서 이번 ()에 실천하고 싶은 일을 나누어 본다.

본당 소식, 구역 반 소식 전달, 건의사항, 기타토의

- 다음 모임 일시, 장소 선정 등

7. 자유롭게 청원 기도나 감사 기도를 바친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자유롭게 기도합시다.

 

 

 

이 방법은 몇번의 실습으로 쉽게 배울 수 있다. 한 공동체에 한 사람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진행하는 법을 배워두고 돌아가며 진행하는 것이 나눔과 평등 그리고 형제애를 실천하는데 도움을 준다.

 

모두가 복음 나누기를 이끌어봄으로써 서로의 형제적 사랑이 공동체 안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 따라서 복음 나누기 진행과정은 소공동체에 참석하는 모든 이들이 잘 알아야 하며 한 사람만 계속 이끌어나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성서에서 삶으로, 삶에서 성서로

 

 

 

복음 나누기를 할 때 공동체들은 미리 정해진 성서본문을 사용하게 된다. 이 본문은 다가오는 주일의 복음이나 독서이기 때문에 당면한 현실 문제들(즉 청소년 문제, 사교육비 증가, 분배문제, 통일문제 등)과는 큰 관련이 없다. 성서 본문이 일상 문제들과는 관련 없이 정해졌다 할지라도, 공동체 구성원들은 그 본문이 자신들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길잡이가 되어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공동체들이 전례시기에 따라 성서를 나누거나, 성서 중 어떤 말씀을 정해서 계속 읽어간다 해도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이 경우는 현실의 특정 문제가 공동체 반성의 출발점과 중심이 되는 것은 아니다.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어떤 공동체는 정반대의 방법을 사용한다. 그들은 먼저 지역적 문제들을 상세히 분석한다. 그 다음에 성서 중에서 그 문제와 관련되는 부분을 찾는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공동체들은 지역문제를 오랫동안 다룰 수 있고 그들의 묵상과 나눔도 되풀이 하여 한가지 문제에 초점을 맞출 수 있으며 여러 성서 구절을 읽음으로써 같은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조명해 볼 수 있다. 그들은 다른 나라와의 적대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해 토론할 수도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하느님이 오랜 역사를 통해 구약과 신약에서 민족들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다루어 오셨는지에 대해 배울 수 있다.

 

이 두번째 방법은 큰 가치가 있지만 위험 부담도 따른다. 우리가 듣고 싶어하는 성서 구절만을 선택하기 쉽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시는 여러 말씀을 듣는 것이 어렵게 된다.

 

그러므로 공동체들은 두가지 방법을 모두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첫번째 방법과 두번째 방법을 번갈아가며 사용하는 것이 좋다.

 

 

? 소공동체의 활동들 : 복음은 삶의 모든 면을 변화시킨다

 

많은 소공동체들은 다음과 같은 활동들을 할 수 있다.

- 매주 복음 나누기

- 복음 선포

- 병자 방문

- 가난한 사람 돕기

- 새로 이사온 사람 방문

- 소공동체 안에 예비자들을 받아들이기

- 신앙 나눔

그밖의 사회적 문제나 교회의 활동들

- 지역문제에 대한 관심

- 지역개발 및 생활환경 개선

- 주일 전례 및 해설 (다른 공동체와 협조)

- 예비자 교리

- 환자 봉성체

- 연령 활동 (연도,장례미사 해설)

 

그러나 어떤 본당에서는 소공동체들이 복음 나누기 이외의 어떤 활동도 하지 않을 수 있다. 실질적인 활동은 개개인에게 맡기고 공동의 활동을 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경우, 이런 모임은 ‘성서연구 모임’이라든가 ‘성서묵상 모임’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당하다. 왜냐하면 ‘소공동체’라는 명칭은 일반적으로 복음 나누기와 구체적인 활동을 하는 공동체에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본당에서는 교우들을 구역이나 반으로 나누고 그 안에서 상호 협조 활동들을 활발히 하면서 위에서 제시한 여러가지 임무들을 논의하고 공동체로서 활동한다.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성장하고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할지라도, 만약 복음 나누기를 하고 있지 않다면 이는 대단히 우려할 만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 공동체는 가장 중요한 하느님 말씀을 중심에 놓고 그 말씀에 비추어서, 삶의 근원과 여러가지 문제들을 풀어나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복음 나누기를 통해 말씀을 중심에 놓고 활동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어떤 본당들은 지역을 작은 반으로 나누고 있지만 이것이 행정적이고 조직적인 이유에서 (본당 소식전달이나 본당을 위한 모금활동 등)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관리?행정적 성격을 띠는 반이라면, 이 반은 소공동체와는 전혀 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소공동체가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일정한 규정은 없다. 구성원 모두가 그들 스스로 의논해서 해야 할 일들을 정할 수 있다.

 

본당 안에서 교회의 여러 활동들을 분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 소공동체들에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도록 맡겨주는 것이다. 그들의 능력 밖의 활동은 본당 차원의 조직 단체나 다른 활동 단체가 맡아 주어야 한다.

 

 

- 소공동체들이 모인 본당 공동체

 

서울대교구가 2000년대 복음화를 선포하면서 교구장께서는 “교구를 활성화하는 이상적인 방법은 소공동체들이 모인 공동체로 만드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많은 소공동체들은 서로에게 속해 있고 그러므로 그들은 강한 유대감를 갖고 있다. 그들 사이의 가장 깊은 유대는 주일 미사에서 이루어지는 성찬의 나눔이다. 그들은 한 제단에서 만나며 말씀과 성체를 함께 영한다. 그들은 이 만남을 서로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로 만들 수 있다. 어떤 본당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성서 봉독 후에 몇몇 공동체가 그 주간에 복음 나누기를 했던 것을 발표하게 하였다. 공동체들이 차례로 전례 준비를 하는 곳에서는 이 방법을 통해 한 공동체를 다른 공동체에 소개할 수 있었다.

사목위원이 임명으로 선출되지 않고 소공동체에서 선출한 대표로 구성될 경우 많은 공동체들이 조직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

 

사제와 부제는 여러 공동체들을 연결하는 하나의 고리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사제와 부제는 공동체들을 연결시키기 위해 공동체를 방문하고 교육도 시키고 공동체들의 일치를 위해 중요한 결정도 함께 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공동체들의 공동체’라는 이상으로 실현되려면 소공동체들이 본당 전체에서 널리 연결되어야 한다. 한 본당의 일부에서만 이런 공동체가 이루어지고 다른 일부에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면, 여러가지 어려움과 문제점들이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소공동체는 본당 전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본당 전체가 소공동체를 이루어 나갈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함께 결정해야 한다.

 

 

- 본당내 단체와 소공동체와의 관계

 

그런데 소공동체가 하지 못하는 몇가지 활동들이 있다. 즉 청년 활동?노동사목?여성연합회? 주일학교에서 교리 가르치기 등이다. 이러한 활동들은 어떤 단체나 연합회에서 훌륭히 해나간다. 그러므로 이러한 단체나 모임들도 항상 필요하다.

 

어떤 본당에서는 가정 방문이나 병자 방문 같은 사목활동을 이런 단체에 소속된 몇몇 사람들이 맡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지고 있다. 교회가 아무리 크다할지라도 소공동체가 있기 때문에 모든 교우들이 참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 공동체들는 그들 자신이 교회라고 느끼게 되었다. 자신들이 어려운 이들을 돕는 교회이며,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그들 자신이 하느님의 메시지를 찾아가는 교회인 것이다. 교회의 일원으로서 그들은 가난한 이들과 복음을 모르는 이들을 찾아간다. 그들이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이런 활동들을 행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병자를 방문하거나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 꼭 어떤 단체에 소속될 필요는 없다. 교회의 일원이 됨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일하도록 불림을 받은 것이다.

 

본당 단체들은 소공동체에서 할 수 없는 활동들을 수행해야 한다. 본당 단체들은 소공동체만으로는 수행할 수 없는 일들이 무엇인지 잘 살펴보고 그 일을 맡아 수행해야 할 것이다.

 

본당 단체들의 활동과 소공동체들의 활동은 서로 경쟁적인 관계가 아니며 상호 보완적이고 조화를 이루는 관계라는 것을 모두가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희생과 겸손의 정신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단체들은 오래 전부터 이러한 활동들을 각자의 사명으로 수행하면서 지속되어 왔기 때문이다. 각 단체의 회칙에는 그 단체의 활동 내용도 명시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로 이루어진 본당공동체를 지향하는 현재에 있어서, 주교들은 이러한 단체나 운동 그리고 모임들이 소공동체와 협조해 나가라고 당부하고 계신다. 즉 단체나 모임들은 소공동체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우면서, 그들의 활동을 소공동체가 담당하지 못하는 범위로 조정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큰 단체의 구성원들도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는 소공동체를 이루는 한 구성원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느 구역에서든지 세례받은 신자들은 모두가 소공동체 구성원으로 초대되어 있다. 큰 단체의 구성원들은 소공동체를 성장시키는데도 가장 중요한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그들은 이 소공동체를 활성화하고 성장시키는 데 없어서는 안될 사람들이기도 하다.

 

 

- 한 공동체 안의 다양한 계층에 대하여

 

 

 

고등교육을 받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흔히 다른 이들과 쉽게 어울리지 않는다. 이는 어떤 자존심이나 나쁜 뜻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여가를 비슷하게 보내는 사람들과 어울릴 때 그들의 마음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들과 너무 자유롭게 사귀면서 혹시 어떤 청탁을 받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한 사람들을 꺼려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자신들과 여러 가지로 다르다고 생각하면서, 그 차이를 극복하고 함께 해나가는 것을 어렵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

 

또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들 중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는 이들도 있다. 많은 재산으로 누릴 수 있는 순간적인 안락과 세속적인 풍요로움을 과시하면서, 더 많은 부를 축적하려는 이기적인 욕망만을 추구할 수 있다.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오히려 자신이 가진 것을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베품과 형제적 사랑으로 이웃을 섬길 줄 아는 마음들을 잃어가기 쉽다. 따라서 주변에서 함께 살고 있는 가난한 형제들의 어려움들도 이들에게는 무관심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하느님은 우리가 모든 분열을 극복하고 한가족이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계층(계급)과 사고방식을 초월해서 일치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본분이다. 가난을 함께 극복하는 것 또한 그리스도의 뜻이다. 소수가 다수를 억압하는 것으로부터의 해방은 하느님 나라의 한 징표이다. 우리는 한 가족, 한 형제가 되어야 한다. 이 목적을 단기간에 쉽게 달성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이를 향해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소공동체는 무엇을 할 것인가? 많은 도시가 주택가로 구분되어 있어 경제적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살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공동체를 형성할 때, 경제적 수준에 따라서 서로서로 나뉘어져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모이게 되는 경향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역시 기존 사회계층의 분열과 사고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게 되어 이 폐단을 없애는 데 기여할 수 없게 된다. 이와 반대로 우리가 소공동체를 가까운 이웃끼리가 아닌 멀리 있는 다른 지역의 사람들과 이루도록 권장한다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게 된다.

 

우리는 가까운 지역의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기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서로가 소외되거나 무관심하지 않도록 권장해야 한다. 그리고 소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들, 소공동체와 소공동체 사이의 차이들을 극복하고 일치를 이루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것은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경제적으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겸허한 섬김의 자세를 보여야 하며,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의타심이나 자신감의 결여 등에서 벗어나 동등한 형제애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모두가 다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과 잘못된 태도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소공동체는 활동하면서 모든 상황과 여건을 조심성 있게 살펴보고 신중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소공동체에서 내리는 판단과 활동들은 복음에서 찾을 수 있는 하느님의 뜻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 하는 노력들은, 단지 개인적인 생활과 개인적인 문제에 대해서만 하느님의 뜻을 찾고 해결해 가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계층 간의 갈등과 문제들은 자주 생겨나지만, 우리가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에 비추어서 복음의 힘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 갈라진 형제들에 대하여

 

우리가 공동체 정신을 강조할수록 갈라진 형제들과 하나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타교파일지라도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함께 교우로서 지역 공동체를 이룰 수는 없을까”라는 질문을 가질 수 있다. 아쉽게도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으로서는 다른 교파들에게도 우리들의 이웃 공동체를 충분히 소개하고 잘 전하는 편이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 만일 그들이 그 뜻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그들도 이와 같이 할 것이다. 다음 단계는 정기적인 합동 모임을 지역에서 만들고 함께 할 수 있는 활동들을 전개하는 일이다. 이런 일들을 점차적으로 발전시키면서 서로가 하나될 수 있는 화해와 일치를 추구해야 한다. 이러한 저변 운동을 통해 교회의 일치는 보다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다.

 

 

-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바로 성전이다

 

 

 

“오직 한 성전이 예루살렘에 있고 유대인만이 그곳에서 희생제물을 바칠 수가 있으며, 그 성전은 돌로 지어졌다”라고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는 말씀하셨다.

 

 

 

그러나 지금은 다시 오실 구세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하느님의 더 영광스러운 성전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 성전은 돌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가 교회로 이해해야 하는 이 성전은, 돌로 세워진 예루살렘 성전보다 훨씬 위대하다.

이 새 성전을 이루는 데 참여하는 사람에게는 평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 성전을 건립한다는 의미는 사람들을 한 곳에 모이게 하고 한 형제로 만드는 것이다.

 

이 성전 건립에 참여하는 이들에게는 평화의 근원인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선물로서 오실 것이다.

 

많은 돌 사이에 자신을 하나의 돌로서 봉헌한다는 것은 이러한 성전을 이루는 일이다.

만일 우리가 남에게 봉사하고 자기의 책임을 받아들이며 교회의 거룩한 신비를 알린다면, 이것 역시 이 성전을 이루는 일이다.

 

 

-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이지만 서로 서로의 지체들 입니다” (로마 12,5)

 

 

 

모두 그리스도께 속하고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신비로운 진리이다. 지금 당신에게 “그리스도의 신비체로서 살고 있는 교우들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인도해 주십시오”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그를 어느 곳으로 인도할 것인가?

 

당신은 아마도 그를 주일 미사로 인도할 것이고 거기서 수백명의 교우들이 함께 말씀과 성체를 나누는 것을 보게 할 것이다. 그는 이 모습에서 깊은 인상을 받기도 하겠지만 교우들이 서로 잘 모르기 때문에 미사가 끝나면 인사도 없이 헤어지는 모습에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그곳에 모였던 교우들의 잘못이 아니다. 개인적인 만남을 가지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리스도 몸의 한 지체로서 서로 잘 알고 서로 관심을 보이며 함께 일하는 그런 곳으로 인도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를 여러 소공동체 중의 한 곳으로 인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진실로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한 몸의 지체로서 사는구나. 그들은 서로를 잘 알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그분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함께 일하며 남을 위해 봉사하는구나. 이것이 한 몸이고 그리스도의 몸이구나.”하고 새로운 교회를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다른 나라, 다른 대륙에 사는 몇 백만의 신자들과도 영적으로 하나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그들의 이름도 모르고 만난 일도 없지만 그들에게 속해 있다. 우리가 그들을 잘 모른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과 하나될 수 있는 것은 한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이웃에 대해서는 어떠해야 하는가? 나의 이웃에 대해서도 내가 그들과 영적으로 하나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 나의 이웃과는 현실적으로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 우리가 한 몸의 지체인 것이 분명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많은 이웃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이 하나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한 몸이며 한 지체라는 것을 현실에서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여러 공동체들이 활성화되기 위해서

 

소공동체를 활성화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방법을 참조할 수 있다.

 

1. 사제나 본당 복음화 위원들의 정기적인 소공동체 방문

2. 구역 지도자로 구성된 봉사자들의 정기적인 소공동체 방문

3. 복음화 위원들의 정기적인 모임

4. 공동체 안의 모든 지도자들의 정기적 모임

(모이는 인원이 너무 많아지지 않도록 인원수를 적당하게 조정)

5. 사목협의회에 소공동체 활동을 정기적으로 보고

6. 공동체 여러 지도자들에 대한 훈련 및 교육

7. 공동체 내에서 교대로 봉사자의 역할하기

8. 이웃 소공동체를 참관

9. 본당이나 대교구에서 모든 소공동체에 보내는 소식지 발행

10. 소공동체가 복음 나누기를 하면서 제기하는 의문이나 문제점이 있을 경우 주일 미사 때 나 소공동체 모임 때 알려주기

 

천주교 서울대교구 복음화 연구실, "소공동체란무엇인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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