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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동체 자료

소공동체란1/2

정월기프란치스코 0 189 2017.05.18 08:23

소공동체를 소개합니다.

소공동체는 교회가 되고자 하는 새로운 길입니다.

반소공동체에서 시작하지만 본당과 교회 모습을 복음적으로 쇄신하고자 합니다.

 

아래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복음화 연구실, 소공동체란무엇인가에서 발췌했습니다.
 

 

어떤 본당의 소공동체 이야기

 

이 본당은 주변에 공단이 들어서 있고 주택가와 상점들이 있는 부유하지 않은 지역에 있다. 92년부터 새 본당신부님이 부임하여 소공동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이제는 매주 모이는 반이 2개반이고, 한 달에 3번 모이는 반이 17개반이며, 한 달에 2번 모이는 반이 24개반,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반이 28개반, 아직 모임을 갖지 못하는 반은 5개 반이 된다. 이 소공동체들은 8-10명이 어느 교우집에서 모임을 갖는다.

  

이 소공동체는 언제나 각자 자기 성서를 가지고 오며 모임의 시작을 복음 나누기로 한다. 복음 나누기를 할 때는 가르치는 선생이나 복음을 해설해 주는 사람도 없다. 어느 한 사람이 교육하는 장이 아닌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고 각자의 고유한 삶의 체험을 나누는 영적 만남의 장소가 된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서도 항상 배울 것이 있는 것이다.

 

모두가 돌아가며 자기의 생활, 기쁨,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면 다른 이들은 귀를 기울인다. 생각을 나누고 삶을 나누며 활동의 체험을 통해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게 된다.

 

소공동체를 통해 하느님을 조금씩 알게 되었으며 믿음의 참뜻과 공동체를 느끼게 되었다. 소공동체 모임이 계속되면서 신앙의 눈으로 자신의 삶을 보게 되었고 그것을 나눔으로써 지금까지 믿음과 삶이 따로였던 생활이 서서이 변화하게 되었다.

 

기도할 때 서먹거리며 눈치를 보던 것이 사라지고 모임이 끝날 때의 자발적인 기도를 통해 모두가 하느님의 현존과 공동체를 더욱 강렬하게 느낄 수 있게 된다.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누가 할 것인가? 언제 할 것인가?’에 대한 의논이 시작되면 모두가 참여하여 의견을 제시한다.

병자 방문, 새로 이사온 사람 방문, 어린이 반모임을 후원하기도 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을 소공동체에 초대하여 고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함께 그 사랑을 베풀기도 하고, 이혼 직전에 있는 가정을 위해 기도와 방문과 보살핌으로 그 가정을 구하기도 한다.

 

그리스도의 눈으로 이웃을 볼 수 있는 눈이 떠진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나 중심의 신앙이 이웃을 알게 됨으로써 이웃에게 열린 신앙이 되고 하느님을 나의 아버지만이 아닌 우리의 아버지라고 확인하게 되었다. 이 공동체는 다른 공동체와 함께 본당과 일치한다.

이제는 말씀의 힘을 느끼고 공동체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으며 나눔, 섬김, 친교가 교리 지식이 아닌 삶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소공동체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왜 나오는지를 묻는다면 이런 대답을 듣게 된다.

“나는 이제 혼자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우리에게 소속감을 줍니다.”, “서로 잘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일들을 함께 해결합니다.”, “복음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음을 느낍니다.”, “복음의 힘을 체험했습니다.”

복음의 작은 씨앗이 우리 안에 뿌려졌으니 하느님은 우리를 자라게 하시고 열매를 맺게 해 주실 것이다.

 

※ 이 소공동체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구체적으로 찾아 본다.

 

 

우리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갈망한다

 

이상적인 공동체를 찾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그러나 우리 인간은 본래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상적인 공동체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이를 추구하게 된다가족, 친족들이 이루는 공동체에서도 갈등과 대립과 분열 등을 느끼게 된다현재 속해 있는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약점이나 단점 때문에 실망하기도 하고 고통을 받지만 비록 불완전한 공동체라 할지라도 이를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하면서 함께 살아나가는 것이다우리 모두는 끊임없이 이상적인 공동체에 대한 희망을 추구하고 있다.

 

서로를 받아 주고, 모두 함께 일하며, 서로에 대한 불신이 사라지고, 나의 이웃이 진정 누구인가를 알게 하고, 각자의 마음을 활짝 여는 데 두렵지 않은 그런 공동체에 대한 희망을 우리는 늘 염원하고 있다.

  

교회가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꿈꾸는 일에만 머물지 않고 비록 부족함이 많을지라도 실현해 나가야 한다그리스도인들은 이 희망을 부여받았다하느님의 공동체를 건설하는 노력이 헛된 일이 아니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앞에서 살펴본 어떤 본당의 소공동체는 그 본당에만 나타나는 특수한 사례가 아니며, 현재 많은 다른 본당에서도 싹트고 자라나고 있는 보편적인 소공동체들의 모습이다지난 5-6년 동안 많은 본당에서 하느님 말씀의 힘을 체험하는소공동체가 이루어져 왔다이 책에서 우리는 이 소공동체의 목적을 설명하고자 한다.

 

 

비대화되어 서로 모르는 교회에서 소공동체로 이루어진 본당 공동체로

 

 

 

  비대화된 교회에서는 교우들이 서로 알기도 어렵고 개인적인 만남과 친교를 가지기도 어렵다또 어떤 본당들은 비대화되지는 않았지만 교우들이 개인적인 문제와 관심과 이익만을 생각하면서 개개인으로 생활하고 있기도 하다지난 몇 해 동안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인도하여 주셨다2차 바티칸 공의회와 그 후 일어난 여러가지 발전 상황은 많은 본당에서 소공동체를 이루고자 하는 결의를 가져왔다.

 

각기 방법은 다르겠지만 크게 보면 앞서 말한 어떤 본당의 소공동체의 예와 비슷하다그러나 우리는 그들 생활의 세세한 부분을 언급하기 전에, 왜 교회가 소공동체를 시작하였는지 그 근본 이유부터 찾아야 한다하느님께서 자신을 내어놓으셨기 때문에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할 것이다.

 

 

공동체로서 존재하시는 하느님을 우리도 닮아야 한다

 

하느님은 외로우신 분이 아니다그분은 공동체로 존재하신다그분은 홀로가 아니라 세 분의 공동체이시다이 세 분은 서로 독립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친밀하게 서로 완전한 공동체로서 존재하신다.

 

 

 

우리가아버지라고 부르는 분은 그분의 권능과 삶을 혼자만 독점하는 것이 아니고 항상 나누고 계신다그분은 당신을 항상 내어 주시고 나누어 주신다그러기에 받는 분은 그분의 일부의 모습이 아니라 완전히 그분과 같다그분은 아들이신 성자이시다아버지는 자신의 전체를 주었기 때문에 아들은 완전히 아버지와 같다.

 

아버지의 나눔은 옛날에 있었던 과거의 일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또한 세상 끝날까지 계속된다이 나눔은 너무나 완전하시기에 어느 한 분이 다른 한 분보다 더 위대하거나 더 작은 존재일 수 없다이 두 분은 완전히 동등하다.

 

의로운 사람은 선을 사랑한다선하면 선할수록 더 사랑하게 된다그러므로 아버지가 그 아들을 볼 때 그의 사랑은 얼마나 클 것인가그는 아들에게서 제한된 선함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완전함을 보기 때문이다아버지가 아들의 완전함에 끌리듯, 아들도 아버지에게 똑같은 무한한 사랑을 느낀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사랑은 맹목적인 관계가 아니며, 느낌이 없는 전기의 흐름 같은 것도 아니다. 이것이 바로 위격이다위격은 살아 움직이는 자체이며, 이 사랑의 위격은 아버지와 아들과 같은 것이다이 위격은 능력, 지혜, 위대함 등 모든 것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같다우리는 이 세번째 위격을성령이라 부른다성령은 사랑  자체이며 두 분 사이에 작용하며 완전한 나눔을 하시는 분이시다또한 그분은 계속 주고 받는 분이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살고 계속적인 공동체 생활을 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랑은 언제나 다른 이와 함께 나누기를 원한다그러므로 하느님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 안에서만 국한되기를 원치 않으시고 우리들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신다우리를 당신 모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나눔의 생활을 언제나 갈망하신다.

 

 

우리가 늘 다른 이들과 더불어 하느님과 함께 살기를 갈망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그러기에 우리는 사랑과 믿음과 나눔이 있고 나를 받아 주고 편안함이 있는 공동체를 갈망한다하느님이 우리에게 이러한 갈망을 불어넣어 주셨기 때문이다그러나 우리의 이기주의는 다른 이와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기를 어렵게 만든다그러나 우리는 계속 갈망한다. 우리는 이 이상을 멈추지 않고 생활 속에서 계속 실천하고 새로운 노력을 시도해 나간다.

소공동체는 삶의 모든 문제를 복음과 관련시킨다

 

소공동체는 그 모습이 각기 다를 수 있지만 항상 두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다그것은 기도와 타인에 대한 관심이다.

 

 

 

기도는 소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삶의 중심이 된다구성원들은 단지 활동만을 하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다그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주님께 귀를 기울이고 그분의 계획을 찾으며 그분께 말씀드린다그들은 자기들끼리만 나누는 것이 아니며, 하느님께서 그들 가운데 언제나 함께 하신다그러므로 소공동체는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것을,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우선해야 한다.

 

기도하는 삶을 통해 하느님의 눈과 귀가 그들의 활동을 비추어 준다자신들의 이해와 필요에 의해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하느님이 그러하시듯 구성원들은 불의에 대해 큰 관심을 갖게 되며, 그들의 구체적 행동 하나 하나는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다따라서 그들은 묵상만 하는 모임이 아니다.

  이러한 이유로 소공동체는 하느님 말씀을 묵상하고 또한 그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분석한다그들은 많은 시간을 기도에 바치면서도 구체적인 실천 활동을 한다.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서를 설명해 주실 때에 우리가 얼마나 뜨거운 감동을 느꼈던가?” (루가 24,32)

 

엠마우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과 함께 걸었던 두 제자가 이렇게 말하였다.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서를 설명해 주실 때에 우리가 얼마나 뜨거운 감동을 느꼈던가?”  오늘날 이와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리스도인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서를 읽을 때 비로소 그들 각자는 오늘 이 세상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듣게 된다. 이럴 때 복음의 뜻이 뚜렷해지면서 하느님과 대면하고 있는 자신을 체험할 것이다그들은 성서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복음의 의미가 새롭게 발견되는 것을 알게 되고 주님의 현존을 느끼게 될 것이다전세계의 주교님들이 오늘날 교회가 무엇을 하도록 요청받고 있는지 식별하기 위해 모일 때도 마찬가지이다주교님들 역시 엠마우스의 두 제자들이 체험한 것과 같은 것을 느낄 것이다주교님들이 주님의 현존을 체험하며 복음의 말씀을 숙고할 때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오늘의 상황 속에서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성서의 의미를 말씀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엠마우스의 체험이 어떤 개인이나 몇 년에 한번 모이는 주교회의에 국한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이 체험은 우리 공동체 생활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그리스도의 제자로 서로 만나며 생활하는 것을 지역 교회에서도 항상 체험해야 한다이런 체험은 이 세상에서 그분의 길을 찾고자 함께 걷고 있는 삶의 현장에서도 일어나야 한다엠마우스에서 두 제자들이 그러했듯이, 오늘날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여서 이 세상 사건들을 서로 이야기하고 있는 공동체 안에서도 일어나야 한다.

 

본당 안에서 자라나고 있는 소공동체는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의 엠마우스 체험을 자주 접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그리스도인들은 오늘날 사람들이 안고 있는 문제 그리고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주님과 함께 걸어 가면서 성서를 읽고 주님의 말씀을 추구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향해 마음을 열어야 하며, 그때에 주님은 당신의 계획을 우리가 알 수 있도록 도와 주신다이때 우리는 주님의 현존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공동체에서 복음 나누기를 꼭 해야 하는 이유는?

 

하느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계속 말씀하고 계시며 우리는 그 말씀을 잘 듣기 위해서 복음 나누기를 소공동체에서 정기적으로 실천해야 한다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그분의 메시지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다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정직하고 겸허하지 못하다면 자신을 속이는 것이 될 것이며 그분의 말씀을 찾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그것은 단지 자신의 원의의 소리를 듣는 것에 불과하다다른 많은 말 중에서 그분의 말씀을 찾는 것이 우리의 최상의 목적이다이러한 이유 때문에 소공동체들은 복음 묵상과 복음 나누기에 많은 시간들을 할애하는 것이다.

 

 

 

공동체들이 언제나 복음 나누기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서로를 더 가깝게 해 주기 때문이다우리 각자가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은 얼마나 하느님의 말씀을 접하는가에 달려 있다또한 서로가 마음을 열고 믿음의 체험을 나누어야 한다이러한 체험은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를 깊이 알게 하며, 하느님이 우리를 서로에게 이끌어 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의 영혼 안에서 뿐 아니라 현실 안에서도 하느님이 역사하심을 깨닫게 해준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많은 사람들과 여러 곳에서 역사하고 계심을 찬미하게 되고 그분의 역사하심에 함께 하게 된다이럴 때 우리는 개개인의 이기심을 극복하는 것을 배우게 되고 진정한 나눔을 시작하게 된다그러므로 우리는 복음 나누기를 통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복음화 연구실, 소공동체란무엇인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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